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누군가에게 맞고, 누군가에게는 안 맞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, 굳이 꼽자면 ‘삶에 잠시 쉼표가 필요한 사람’에게 추천하고 싶어요. 진로, 관계, 인생의 방향처럼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품고 있는 분들에게 이 길은 아주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 줄 수 있습니다.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, 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이 생기거든요.

반대로, 순례길을 ‘반드시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곳’이라고 기대하고 온다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어요. 이 길은 단번에 인생을 바꿔주는 마법 같은 장소가 아니라, 그저 묵묵히 걷는 여정일 뿐이거든요. 기대가 너무 크면 오히려 그 안에 숨어 있는 잔잔한 감정과 소중한 순간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. 결국 이 길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는, 걷는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걸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.

하지만 순례길은 ‘완벽한 준비’가 필요한 여행이 아닙니다. 오히려 준비가 조금 부족해도, 그 부족함을 길 위에서 스스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진짜 순례의 본질 아닐까 싶어요. 흔히들 말하죠. “완벽하게 준비되는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.” 저는 그 말이 순례길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다고 생각해요.

걷다 보면, 길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. 그동안 미뤄두었던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고, 잊고 지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죠.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걷다 보면,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정리되는 걸 느끼게 됩니다.

이 책이 누군가에게 그런 첫걸음의 용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, 저로서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. 순례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. 단지 우리가 용기 내어 한 발 내딛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.